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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의 역사에서 제임스 지저스 앵글턴은 가장 비밀을 많이 알았고 강력한 방첩 활동을 한 요원으로 기록될 것이다.

 1954년에서 1974년까지 CIA의 방첩대장이던 앵글턴은 아직까지도 CIA와 그 명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스파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플라이 낚시를 즐기며 난초를 키우고 시집을 읽는 앵글턴의 면모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그는 "극심한 편견을 지닌”이라는 표현을 만든 사람이었는데, 이것은 CIA 암살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1961년 구소련의 KGB 요원 아나톨리 골리친이 CIA로 전향한 후, 앵글턴은 CIA 내부에 최고위급 비밀공작원이 침투했다고 확신하여 안 그래도 편집광적인 성격이 더 심해졌다. 앵글턴은 자신의 모든 서류를 폐기했으며 사무실의 금고 25개를 모두 집으로 옮겼고 소련의 전향자들이 가짜라고 우겼다. CIA의 동료 에드워드 페티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외로운 늑대처럼 모든 일을 혼자 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1974년 앵글턴이 CIA 방첩 대장직을 물러나자 그가 수십 년간 지켰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5년 미 의회는 처치 위원회를 통해 CIA의 범죄를 조사했다. 처치 위원회는 곧 카오스 작전 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했다. 카오스 작전이란 앵글턴이 반전단체와 시민인권단체를 탄압하기 위해 계획한 불법적인 국내 감시와 온갖 추악한 계략들이었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을 불법 감시한 일은 앵글턴의 비밀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앵글턴은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를 창설했을 뿐만 아니라 글라디오 작전'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7년 이탈리아에서 조직된 글라디오는 앵글턴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모집한 전 나치 친위대 장교들과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을 활용했다. 또 앵글턴은 과거 함께 일했던 마피아 조직원들도 글라디오에 끌어들였다. 글라디오는 마약거래로 얻은 수익을 반공 활동과 친파시즘 활동 자금으로 조달했으며 P2(프리메이슨의 이탈리아 지부) 음모에도 가담했다. 글라디오는 전성기에 고위급 조직원 수천 명을 동원해 이탈리아가 공산 치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으며,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암살 계획에서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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